들어가기 앞서, 스모 선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 '리키시'는 기대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볼 드라마가 없으면 보는 걸 추천.
[스모를 모르고 봐도 너무나 재미있는 드라마]
-한국인에게 스모는 낯선 스포츠이다. 아무리 씨름이 한국인에게 익숙한 문화이자 스포츠라고 하더라도, 스포츠로서 씨름에 대한 관심은 구시대적이고 쇠퇴해 가는 것으로 치부된다. 야구나 축구에 비하면 시장의 규모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스포츠는 팬들의 관심을 먹고 사니까.
-내게 스모가 낯설은 이유는 스모 선수들의 비대한 몸에 있다. 한국인에게 씨름 선수의 몸을 떠올리라고 하면 이만기, 강호동의 몸을 떠올릴 것이다. 일반 사람의 두 배나 되는 골격과 크나큰 키 그리고 갑옷처럼 몸을 두른 단단한 근육들. 힘만이 아니라 민첩성과 유연성까지 중요했기에 만들어진 그 튼튼하면서 날렵하게 담금질 된 육체는 강함과 동시에 사람으로서 건강해보인다. 물론 그런 선입견과 달리 운동 선수들이 일반인들보다 건강 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반면 스모를 떠올리면 스스로 항문조차 닦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진 살덩어리가 생각난다. 많이 벌고 빨리 죽는 스모 선수야말로 일본 여자들의 1순위 신랑감이란 우스갯소리처럼 내게는 스모는 이상하기만 한 스포츠였다. 무도의 추구점을 보신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더더욱 스모는 기이했다. 더 뛰어난 스모 선수, 리키시가 되기 위해선 그 몸은 우선 미관적으로 형편 없어졌고 개인의 건강에도 치명적이었다.
[스모이기 이전에 스포츠 드라마]
-스모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이 이야기는 훌륭한 스포츠 드라마다. 주인공 오제 키요시가 재능만 믿고 날뛰던 철부지에서 성숙한 인간이자 훌륭한 스모 선수로서 담금질되며 성장하는 스토리며, 인물들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스모 선수로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스모를 하며,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행을 겪어서까지 스모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그려진다. 거기에 있어 감독은 스모를 모르는 사람들이, 일본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누구나 공감하고 알 수 있게끔 쉽게 그 감정들을 표현한다.
-페이커 선수는 'e 스포츠란 과연 스포츠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드라마 '리키시'는 스모라는 종목만 생소할 뿐,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스포츠 드라마였다.
[젊은 스포츠 스타의 성장 스토리]
-'리키시' 드라마를 요약하면 주인공 '오제 키요시'의 성장 스토리다.
스모가 그저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키요시, 제 재능만 믿고 하늘 모르고 까불던 유망주가 더 거대한 재능 앞에 패배하고 재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였다.
-왜 그렇게 많은 젊은 스타들이 호구 잡히는 걸까?
드라마를 보며 호구가 된 키요시를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다. 궁박한 삶에서 한순간에 벌게 된 큰 돈, 처음에 접근한 사람은 호스티스 여자였다. 호구 잡힌 남자와 호구 잡은 호스티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나라도 당하겠는데?란 느낌이 절절하게 들었다. 운동만 하던 키요시에게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팔짱을 끼고 스킨십을 하는데, 어떻게 거기에 안 넘어갈 수 있겠어?
-패배를 극복하고 갖은 노력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종목을 좌우하고 다양한 스포츠 드라마들이 많은 흥행을 하는 것도,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도장( 道場 )과 도효( 土俵 )]
-스모의 도장은 여느 스포츠의 도장 혹은 체육관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도효에 대한 기이한 문화를 보면 그렇다.
다른 스포츠에서 도장은 연습을 하는 공간, 주로 많은 활동을 하며 경기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스모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도효는 스모 선수들이 경기하는 원형의 땅을 말한다. 그것이 기이한 이유는 드라마 초반부터 나오지만, 도효엔 오직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대해 여성 기자는 성차별이 아니냐며 남자 상사에 대해 반문하기까지 한다. 또한 현실에서 응급 처치가 필요한 스모 선수가 도효에 쓰러졌음에도 여성 응급요원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드라마는 이와 같이 그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전통을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 자체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더욱 드라마가 물흐르듯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지 혼자 잘난 줄 알았던 키요시가 도장의 선배들과 끈끈해지고, 미움 받던 도장 동료들로부터 응원 받게 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특히 은퇴식 에피소드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잡설]
-좋은 성장 스토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리키시는 그런 면에서 좋은 드라마로 느껴졌다.
-주인공의 대적자인 시즈우치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그려졌다고 느껴졌다.
악마처럼 웃는 악역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똑같은 인간이라고 연출된 게 좋았다.
-다만 결말 부분이 열린 결말로 끝이나 아쉽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