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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ㅍ) 돌풍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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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시만요! 2024. 7. 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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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가 대선 출마하는 것까지만 보고 감상평을 남겼다가 댓글로 써주신 거 보고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구나 싶어서 다시 보고 씁니다. 참 부끄럽네요(4화 초반까지만 봐서 여당을 우파정당으로 착각함. 심지어 3화 중반에 인권변호사, 서민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장면도 있는데)

 

 

1. 돌풍이란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인가

 

 이 드라마는 국무총리 박동호가 대통령 장일준을 살해하고 권한대행이 되어 적폐를 청산하려는 이야기입니다.

박동호는 구체적으로 대진 그룹과 그와 결탁한 정치인들을 모조리 심판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박동호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장면이 백미인 작품입니다. 

 

2. 이 드라마, 볼만 한가요?

 

 사이다스러운 전개를 좋아하신다면 재밌게 보실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나쁘지 않습니다. 매화마다 도파민 쇼를 벌이듯 보는 사람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극단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합니다.

 

 다만 저는 쉽게 추천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드라마는 정치 드라마지만 정치엔 그다지 집중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권력 그 자체에 집중하며, 권력을 얻기 위해 작품 속 인물들은 무엇이든 합니다. 뭐가 옳냐, 그르냐가 뭐가 중요한가요? 권력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걸요.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두 가지를 기대하며 봤습니다. 하나는 난관을 권한대행이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또 하나는 정경유착과 재벌개혁을 어떻게 해낼 것이냐. 전자의 경우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고, 후자의 경우 편의적으로 해결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낍니다.

 

 

3. 주인공 박동호

 

 국무총리에서 권한대행,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박동호란 인물의 동기는 정의입니다. 박동호가 주장하는 정의는 정경유착과 재벌개혁이고 구체적으론 대진 기업과 그와 결탁한 정치인들이 타겟입니다. 박동호는 본인이 검사 시절 대진 기업을 수사했지만 검사 옷을 벗어야 했고, 그 지인 중엔 대진 기업을 수사하다 사망한 서기태 의원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동호는 기존의 시스템 안에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고, 대통령을 살해해 권한대행이 되어 그 짧은 시간 동안 적폐를 청산하려 합니다.

 

 문제는 박동호의 계획이 매우 허술하다는 점입니다. 그 계획 자체도 박동호가 주체적으로 결심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통령의 구속 수사가 당면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선수를 치는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박동호의 살인을 비서실장이 눈치 챈 뒤 박동호가 감정에 호소해 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장면도 계획의 허술함을 보여줍니다.

 

 권한대행으로서 박동호의 계획이 실행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된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 이장석을 찾아가 지검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대진 그룹을 수사하려 합니다. 비서실장이 이에 대해 반발이 심할 것이라 하자, "기수는 파괴할 겁니다. 서열은 무시할 거구요."라고 박동호는 대답합니다. 박동호의 개혁은 이렇습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사람을 바꿉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박동호가 바꾼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검사 이장석을 지검장으로 앉혀 검찰 수사를 하는 계획도 불완전해보입니다. 권한대행으로 지검장으로 임명시키고 수사를 지시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는 것보다 권한대행이 끝나는 시기가 빨라도 몇 배는 빠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동호의 계획이나 개혁은 도무지 믿기 힘듭니다.

 

 권한대행으로서 직무도 문제입니다. 박동호는 권한대행으로서 기자들 앞에서 다음 정권으로 안전히 대한민국을 인계하겠다는 식의 발언이 아니라 새롭게 취임한 대통령처럼 발언합니다. 마치 대통령을 승계한 미국 부통령처럼요. 대통령도 자기 마음대로 다 하기 힘든 마당에, 권한대행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개혁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정해져있습니다. 그러니 이 박동호란 인물은 가진 바 능력에 비해 얼토당토 않는 계획을 세운 셈입니다. 이 인물에게 권력을 향한 강력한 투쟁심은 있어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폐 청산을 할 것인지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권한대행으로서 시간이 촉박함에도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이와 관련된 인물을 포섭하고 빠른 속도로 대진 그룹만은 죽이고 가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임종 날자를 받은 입장임에도 박동호는 느긋합니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12부작이고 그에겐 대선후보의 길이 내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선후보 경선부터 대선후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투쟁입니다.

박동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상천처럼 라이터를 들고 정수진 앞에서 말하는 장면과 조상천 호보의 비밀을 폭로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의 장면은 사뭇 해학적입니다. 국무총리로서 정의롭지 못한 대통령에게 정의의 이행을 요구하던 박동호는 장일준 대통령보다 훨씬 더 불의한 존재로 변모합니다. 블랙리스트부터 탄핵심판, 시위 해산이 아닌 폭도 진압 등 각종 민감한 소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끝내 박동호는 원하던 것을 마법처럼 이룹니다. 정수진, 조상천, 대진 그룹과 그와 관련된 정치인들.

 

결말은 박동호의 계획대로 죽음으로서 박동호의 죄는 용서받고 살아있는 자의 죄는 처벌을 받는다.

사람들은 박동호를 추모하고, 박동호의 연설 장면이 나오며 돌풍 박동호가 쓰여진 오래된 태극기와 같이 관을 화장하며 드라마는 끝난다.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드라마를 좋아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결말에 이르러서 박동호를 미화하는 것으로 끝을 내는 부분이야말로 더없이 불쾌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박동호란 인물은 스스로 정의를 주장하는 인물이며,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기존 시스템과 원리 원칙 안, 절차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밀의 숲 이창준 차장 검사는 죽음으로서 그것을 보여줬다.

 

 나는 이창준 검사의 죽음을 영웅적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가 상대하는 시스템은 이창준 검사 따위보다 훨씬 더 거대한 악이었으며, 드라마는 그의 선함과 선한 그가 정의롭지 못한 수단으로 정의를 관철하기까지 그의 고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비밀의 숲은 황시목을 통해 그가 의인이냐, 범죄자냐는 뉘앙스의 질문에 괴물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와 달리 난 박동호의 죽음을 영웅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특히 마지막 화에 모두가 그를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투신한 의인처럼 대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박동호에겐 이창준 검사만큼 그 불의를 수단으로 선택하기까지 고뇌나 죄책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인물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수단들을 선택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수단을 선택한 뒤 어떠한 감정적 동요나 죄책감을 내비치지 않는다. 또한 박동호를 볼 때 연상케하는 정치인과 달리 역설적이게도 가장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독재자나 다름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곧이 자신의 정의를 이행할 뿐, 남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또한 장인 뒤나 닦아주던 검사와 이미 정치계에 입문해 국무총리까지 하고 있는 사람과는 할 수 있는 일의 영향력 자체가 궤를 달리 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도 무척이나 불쾌하다. 세상엔 기존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며, 대한민국은 피로 그 대가를 치뤘다. 하지만 그 당시와 작중 박동호을 같은 선상에 올릴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사람을 바꿈으로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경유착, 재벌개혁을 끝내기 위해선 대진그룹을 수사하고 그와 결탁한 정치인을 치우고 총선으로 새 국회의원을 뽑으면 대한민국에 먼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가 죽고 나면 이름만 바꾼 또다른 기업이, 또다른 정치인이 그 자리를 대체할 뿐이다.

 

 정의의 영역도 아쉽기 그지 없다. 드라마의 태반은 권력 투쟁에 관한 이야기고, 서로가 서로의 밥그릇을 쟁취하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더럽고 추잡하기 짝이 없는 협잡질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그의 정의는 오직 정경유착과 재벌개혁에만 국한되어 있다. 박동호가 살인까지 감수하며 나선 동기,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 비해 작품 속 대한민국은 정경유착과 재벌로 인해 망하기 일보직전인 상황으로 보기 힘들다. 애초에 대진 그룹 회장이 징역을 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작 서민에 관한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은 게 아쉽다. 물가, 국민연금과 전세사기 같은 이슈는 없다. 서민에게 정경유착과 재벌개혁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그런 이슈들인데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던 대통령이 정작 서민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다.

 

 

4. 아쉬운 점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한 드라마인 건 확실하다.

자극적인 소재를 과감하게 사용했고 매화마다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재미를 위해 포기한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주인공은 정의를 주장하지만 드라마 그 어디에도 그 정의에 대한 설득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매번 해결해나가는 방식도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주위 인물들도 역할이 정해져있어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카메라가 먼치킨 박동호의 행보에 맞춰져있지만, 정작 그 인물이 매력적이지도, 그만큼 뛰어나지도 않아 아쉽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건 쉬운 일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제한된 조건에 온갖 규칙을 지켜가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